
체중이 늘었다는 것만으로 기뻤던 순간
처음 트레이너 말대로 무작정 먹으면서 운동하던 시절, 체중이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는 진짜 기뻤다. 그동안 아무리 먹어도 꿈쩍 않던 체중계 숫자가 올라가는 게 처음이었으니까. 방법이 맞든 틀리든 그냥 기분이 좋았다.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 자체가 처음이었으니까.
그 기쁨이 한동안 계속됐다. 배가 나오는 건 알았지만, 그래도 체중이 느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. 배 좀 나오면 어때, 그래도 멸치 소리는 안 들을 것 같으니까.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계속 먹었다.

친구들 말에 처음으로 뜨끔했다
잘못됐다는 걸 처음 감지한 건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을 봤을 때였다. 어깨는 전보다 조금 벌어진 것 같기도 한데, 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. 사진을 보면서 멸치는 탈출했는데 배가 이상하게 나온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.
친구들도 한 마디씩 했다. "야, 이제 말라 보이는 건 아니네. 근데 배가 많이 나왔다. 아저씨 같다." 친구니까 그냥 하는 말인 건 알겠는데, 멋져 보이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약간 실망이 왔다. 말랐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시작한 건데, 이번엔 배 나왔다는 말이 들어오는 거다. 새로운 스트레스였다.
멸치 소리는 안 듣게 됐는데, 이번엔 배 나왔다는 말이 들어왔다. 하나를 해결하니까 또 다른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.
길을 걸을 때 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
멸치였을 때는 배에 대한 신경이 없었다. 배가 나올 게 없었으니까. 근데 배가 불뚝해지고 나서부터는 밖에 나갔을 때 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. 옷이 배에 붙지는 않나, 걸을 때 어떻게 보이나. 이티처럼 보이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. 마른 몸을 감추려고 헐렁한 옷을 입던 시절이랑 비슷한 자의식이, 이번엔 배 때문에 생긴 거다.
그게 좀 씁쓸했다. 뭔가를 해결하러 시작했는데, 해결되기는커녕 신경 써야 할 게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었다. 멸치 콤플렉스 대신 배 콤플렉스가 생긴 거랄까.
벌크업이 아니라 살크업이었다
그 시절을 지금 뭐라고 부를까 생각해 보면, 벌크업이 아니라 살크업이었다. 근육이 붙은 게 아니라 그냥 살이 찐 거였다. 무작정 먹었으니까. 단백질이든 탄수화물이든 지방이든 뭐든 많이 먹으면 된다는 방식의 결과였다. 체중은 늘었는데 몸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은 거다.
이 경험이 나중에 두 번째 PT를 받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. 그냥 이렇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,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들었다. 잘못됐다는 걸 느껴야 제대로 된 방향을 찾으려 하게 된다는 게, 돌이켜보면 그 살크업 시절이 가진 의미이기도 했다.
그래도 한 번은 해볼 만했다는 이유
잘못된 벌크업이었고, 배가 나왔고, 튼살도 생겼다. 그게 다 후회냐고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. 그 경험이 없었다면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을 거다. 직접 겪어봐야 어디서 잘못됐는지, 다음엔 뭘 달리해야 하는지가 보인다. 이론으로 읽는 것과 몸으로 겪는 건 다르다.
멸치탈출을 꿈꾸다 살크업을 경험한 그 시절이, 지금의 나를 만드는 과정 중 하나였다.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씩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됐고, 그게 꾸준히 운동을 이어올 수 있는 바탕이 됐다. 완벽한 시작보다 일단 시도하는 것, 그 시도에서 배우는 것. 그게 결국 더 오래 가게 만든다.